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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, 봐요! (44) 겨울나기

입력 : 2017-12-15 14:11:00
수정 : 0000-00-00 00:00:00

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, 봐요! (44) 겨울나기 

 

겨울나기

정덕현

 




 

바람이 매섭다. 해가 짧아졌다. 기온은 영하로 치닫는다. 춥다. 겨울이다. 숲이 텅 빈듯하다. 대부분의 나무들은 그 찬란했던 가을의 잎들을 떠나보냈다. 사람들은 이를 단풍(丹楓)이라 칭하며 울긋불긋한 빛깔들의 향연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들을 만들었겠으나, 정작 나무들에겐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었다.

햇볕과 물이 부족해져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나무들은 잎자루에 떨켜층이라는 것을 만들어 잎들을 억지로 떠나보낸다. 새봄이 오기까지는 힘을 아껴야만 하는 것이다. 연연해할 수가 없다. 이 겨울을 버텨내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. 그러나 한 가닥 힘이라도 모아 지켜내야 할 게 있다. 겨울눈. 새 생명의 싹을 품고 있는 결정체인 것이다. 그래서 온갖 비늘과 털들로 겹겹이 감싸 안고 보호한다. 그 겨울눈에 새봄의 햇볕이 깃들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하는 것이다.

그렇다면 이런 나무들의 싹을 먹고 꽃꿀들을 먹고 살아가던 나비들은 모두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 것일까?

나비들의 겨울나기 모습은 4종류로 나타난다. , 애벌레, 번데기, 성충의 모습으로 나름의 전략들을 가지고 겨울을 인내한다. 먼저 알의 상태로 겨울을 나는 모습이다.

 

 

 

붉은띠귤빛부전나비월동알



녹색부전나비류월동알


물빛긴꼬리부전나비월동알



나비엄마들은 아기들이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그네들만의 식초(食草)위에 알을 낳는다. 겨울눈속이나 나뭇가지 홈 속, 줄기 등이 안식처가 된다. 수많은 천적들이 꼼짝도 못하는 알들을 노릴 테니 그들의 눈에 안 들게 잘 숨겨둬야 한다. 그러나 먹이사슬을 피할 수도 없으니 되도록 많은 알들을 여기저기 낳아둬야 하는 것이다. 그 중 2퍼센트 정도만 성충으로 자라날 수 있다니 나비엄마의 마음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다.

 

 


세줄나비월동태


어리세줄나비월동태


왕오색나비월동태



애벌레상태로 겨울을 나는 모습들이다. 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먹어둔다. 그러다 기다림의 시간이 다가오면 실을 토해내어 제가 겨울을 날 잎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묶는 것이다. 그 마지막 잎새는 웬만한 바람에는 끄덕도 않는다. 또 어떤 아이들은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와 떨어진 낙엽 틈새를 파고든다. 잎 뒷면에 붙어 추위를 견뎌내며 싹트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. 이렇게 엄마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잎들은 수많은 생명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요람이 된다. 이를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또다시 느껴보는 것이다.

 

 

 

흰나비류월동태


청띠신선나비

 

 

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는 나비들은 먹이식물로부터 떨어져 나와 최대한 안전한 곳을 찾아 고치를 튼다. 위 흰나비류 번데기는 간이버스정류장 천정 위에 자리를 잡았다. 추위도 좀 막을 수 있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새들의 눈에도 덜 띄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 전략이리라.

마지막으로는 날개를 단 성충으로 겨울을 나는 나비들이 있다. 풀숲이나 바위틈에 있다 햇살 따뜻한 날에는 잠시 볕을 쬐러 나온다. 나는 한 겨울에 어쩌다 그네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큰 행운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기 그지없는 것이다.

사람들도 겨울나기를 한다. 나비들은 그나마 자연의 흐름에 몸을 내어맡기는 법을 알아 겨울을 난다지만 어쩌면 너무나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은 계절의 겨울은 물론이고 마음의 겨울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. 몸이 추우면 마음도 더 추워지는 법이다. 이 겨울에 혹여 몸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시린 이들이 있다면 진정어린 다독거림이 우리들 언 마음을 녹여주지 않을까 싶다.

나는 생명의 흐름들 속에서 언제나 원을 생각하곤 한다. ‘에게서는 완성의 느낌이 든다. 작은 곤충들의 생태싸이클에서도, , 여름, 가을, 겨울 계절의 흐름 속에서도 크고 작은 원의 순환을 느끼곤 한다. 그 순환들 속에서 거쳐 가야 할 어느 한 과정이라도 빠지게 된다면 원은 끊어져 완성되지 못한다. 사람이든, 나비든, 몸이든, 마음이든 이 혹독한 겨울을 잘 받아들여 견뎌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원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다.

이 땅위의 생명들이여, 겨울을 잘 나기를. 긴 기다림 뒤에 새봄이 올지니.


숲해설가 정덕현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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